티 없이 맑게 반짝이는 바가노르 아이들의 눈망울 가슴에 간직
- asianfriends
- 3월 31일
- 3분 분량

안녕하세요?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주관 WFK 청년단기봉사단 47기 박치우입니다.
저희 몽골버스( WFK 청년단기봉사단 47기 팀명)는 지난 1월 08일부터 20일까지 24명의 단원과 3명의 인솔진이 마음을 모아 몽골 바가노르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마주한 몽골에서, 다시 들이킨 차디찬 숨은 그 어느 때보다 아팠다.
교환학생 이후 다시 온 몽골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2024년 상반기 동안 울란바토르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게르촌이나 판자촌을 보지 못해서 그 사람들의 생활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리는 봉사 첫 활동으로 장애아동 가정을 방문했다. 바가노르에 도착해서 마주한 풍경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은 판잣집과 당장이라도 바람에 휩쓸려갈 것같은 작은 게르였다. 작은 판자집과 게르를 보며 내가 과연 이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도 되는걸까, 이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쳐다봐야 하는걸까… 하는 마음에 눈을 감고 싶어졌다.
그러나 매서운 겨울바람을 버텨내는 집안에선 바람이 끼어들 틈도 없이 사랑이 가득했다. 지체장애로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의 볼을 연신 만지며 어찌나 사랑스럽게 아이를 바라보던지. 그 어머니의 눈빛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든 마음만 가득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득한 집을 보니 그 마음이 금세 휘발되어 사라졌다.

교육봉사를 진행한 125번 학교는 꿈나무센터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첫날 학교로 향했던 길은 내 마음만큼이나 무겁고 길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무언가 배울 점을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좋아해줄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길 앞에 놓여 내 걸음걸음을 방해했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학교도 알았는지, 첫날의 학교는 우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체육관을 사용하고, 정리가 되지 않고, 책걸상을 옮기는 시간이 지체됐으며 그저 어수선하기만 했다.
처은 보는정리되지 않은 상황은 나를 암흑 속으로 밀어넣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아이들은 빛났다.


아이들은 티없이 맑고 반짝이는 눈으로 연신 나를 쫓았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사람에 대한 관심이고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내가 준비한 수업을 진행했을 뿐인데 나를 어떻게 애정으로 보겠어 라는 생각이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나를 더 다정한 눈빛으로 봐줬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엄하고 모난 선생님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나를 보는 눈빛은 점점 더 빛났다. 한줌이나 될까. 그 작은 손에 펜과 종이를 쥐어주면 자꾸만 내 이름을 적어줬다.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는 말에 선생님들의 명찰을 가져가서 적어낸다. 아이들은 암흑 속에 있는 나를 꺼내준 빛이었다.

첫날엔 도착하지 않을 것같던 멀었던 그 길에 끝끝내 도달했고, 끝나지 않을 것같던 교육봉사가 끝이 났다.
체육대회라는 마지막 만남을 앞두고도, 교육봉사의 마지막이라고 하니 왜인지 아침부터 마음이 아렸다. 오지 않을 것같던 마지막 교시에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지에 적힌 내 이름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내 이름이 이렇게 찬란했던 적이 있던가. 마지막이라 아쉽다는 선생님들에 비해 이별에 덤덤하던
아이들을 보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아이들이었는데, 마지막 중등팀 사진이라는 말에 한 아이가 토라졌다. 나를 유독 따르던 아이였는데, 곧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로 토라졌음에도 내 옆에 서 사진을 찍겠다는 아이를 보며 느꼈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것은, 한참이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봉사의 수혜자는 나였다. 아이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책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숨어 있습니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야가 넓어집니다.
[Mr A’s Farm ]